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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 Habit

백른 H 합작 참가글

오전 6시 25분.

 

민현은 고막을 찢을 듯이 울리는 알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몸을 뒤척이며 작게 앓는 소리를 낸 민현이 머리맡에서 시끄럽게 울고 있는 휴대폰으로 더듬더듬 손을 뻗었다. 화면을 꾹 눌러 알람을 끈 민현은 느릿느릿 허리를 일으켰다. 자꾸만 다시 감기는 눈을 끔뻑거리며 졸음을 몰아내려 노력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집어 올려 꾹꾹 다이얼 화면을 켰다. 단축번호 1번. 가족들을 다 제치고 민현의 첫 번째를 차지한 사람은 꽤 오랫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민현은 인내심을 가지고, 귀를 울리는 강렬한 힙합 음악이 끊기기를 기다렸다. 노래가 거의 끝나갈 쯤이 되어서야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민현이냐……?’

 

방금 잠에서 깬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꽉 잠긴 목소리였다. 민현은 언제 피곤했냐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민현은 이불을 깔끔하게 개어놓으며 나긋한 목소리를 수화기에 흘려보냈다.

 

“응, 동호야. 일어났어?”

‘그러니까 너랑 통화하고 있겠지……’

“그래, 그래. 어제 몇 시에 잤어? 목 많이 잠겼네.”

‘으응…… 두 시……’

“내가 늦어도 한 시에는 자라고 했잖아.”

 

다정한 목소리로 나무라자 작게 꿍얼거리며 불평하는 소리가 돌아왔다. 민현은 하하 웃으며 침대 밖으로 나왔다. 귀여워, 강동호. 그러자 또 웅얼거리는 졸음 가득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직접 듣고 싶은 목소리인데. 강동호의 아침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민현의 큰 아쉬움 중 하나였다.

 

“아무튼 어서 일어나, 동호야.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응, 아라써……’

“그래. 나중에 보자.”

 

발음도 제대로 못하면서 알았다고 대답하는 것이 웃겼다. 민현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양치를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는 행복으로 가득했던 얼굴에 금세 피로가 차 올랐다. 동호에게 일찍 자라고 잔소리를 하긴 했지만, 민현도 그에 못지 않게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는 탓이었다. 칫솔을 입에 문 채로 목을 이리저리 돌리자 우드득거리는 뼈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몇 시간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탓이다. 민현은 잠시 정형외과를 가봐야 하나 고민했다.

가볍게 샤워까지 끝내고 나와보니 15분이 지나 있었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께서 아침을 준비하시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느라 어머니도 고생이 많으셨다. 민현이 부엌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어떻게 눈치채시고 뒤돌아 아침인사를 건네주셨다. 민현은 어머니를 향해 샐쭉 웃으며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동호는 깨웠어?”

 

당연하다는 듯한 어머니의 말투는 꼭 동생을 깨웠냐고 묻는 것 같았다. 민현은 수저를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 다시 전화하려고.”

“어제는 몇 시에 잤어?”

“열두 시에 잤어. 걱정하지 마요.”

 

어머니가 걱정하실 까봐 하는 거짓말이었지만, 왠지 양심이 찔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수저를 다 놓은 민현은 방으로 돌아가 옷장을 열었다. 어제 다림질까지 해서 가지런히 걸어둔 교복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민현은 그것을 옷걸이에서 꺼내며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익숙하게 1번을 꾹 누르고 귓가에 가져다 대니 비트가 고막을 세게 때려와서 귀가 아팠다. 컬러링 좀 바꾸라고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동호가 전화를 받았다.

 

‘왜애……’

 

역시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다. 민현은 와이셔츠 소매에 팔을 끼워 넣으며 미소를 지었다. 동호가 잠에서 깨면 뒤척거리다가 다시 잠드는 습관이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민현은 일부러 모닝콜을 두 번씩 걸었다. 민현은 어깨와 귀 사이에 휴대폰을 끼운 채로 단추를 채웠다.

 

“빨리 일어나. 너 다시 자는 거 내가 모를 거 같냐?”

‘아, 하여튼 황민현…… 진짜 끈질겨……’

“아침에 전화로 깨워달라고 한 건 너거든?”

‘니가 이렇게 독한 놈인 줄은 몰랐지……’

 

민현은 킥킥 소리를 내어 웃었다.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우스웠다. 친구 놈이 아침 좀 거르고 학교 오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서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두 번씩 전화를 거는지. 민현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인지 웃지 말라며 투덜거리는 것이 들렸다. 그제야 침대에서 일어나는지 끙, 하는 소리도 들렸다.

 

“일어났어?”

‘일어났다, 일어났어. 아, 너 때문에 잠 다 깨버렸잖아.’

“내가 고맙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 씻을 거야, 끊어.’

“아침 꼭 먹고. 조금 있다가 보자.”

‘그래.’

 

뚝, 목소리가 미련 없이 끊겼다. 통화 종료를 알리는 화면을 가만히 보던 민현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어느새 식탁 위에는 따뜻한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다. 민현은 의자를 끌어 그 앞아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기계적으로 뱉은 뒤 수저를 들었다. 김치 한 토막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으니 출근 준비를 끝낸 어머니가 현관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지금 가세요?”

“응. 학교 조심해서 다녀오고, 끝나면 연락해.”

“네. 다녀오세요.”

“그래.”

 

동호 잘 챙기고! 문이 닫히기 직전에 들린 목소리에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께서 걱정하시지 않아도, 강동호를 챙기는 건 황민현이 세상에서 제일 잘 했다. 해외에서 일하시는 동호의 부모님 덕에 민현은 동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잠은 많으면서 잠드는 시간은 늦다는 것이나, 튼튼한 몸과 달리 열감기에 자주 걸린다는 것 등등. 민현은 그 사실이 왠지 뿌듯했다.

깨끗하게 비운 밥그릇을 싱크대에 넣은 민현은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고 잔머리를 정리한 뒤, 미리 챙겨둔 가방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민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가 쌓여 있기에 메신저 앱에 접속했다. 메시지의 대부분은 반 친구들과 만든 단톡방에서 나온 것이었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미련 없이 잠금 버튼을 누른 민현은 때 맞춰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오늘은 웬일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내려갔다. 아침부터 운이 좋다는 생각이 민현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작은 공간을 지나자 아파트 입구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넓은 등이 보였다. 잠 다 깼다더니, 서있는 상태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우스웠다. 민현이 등 뒤로 다가서 어깨를 톡톡 건드릴 때까지 동호는 고개를 이리저리 숙여가며 졸고 있었다.

 

“어, 왔어?”

“서서 졸면 어떡해. 넘어지면 어쩌려고.”

“아, 만나자마자 잔소리냐. 됐어. 빨리 가자.”

 

가방 끈을 손으로 꽉 쥐고는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는 동호의 뒤를 따라가는 민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동호의 옆에서 나란히 걷던 민현은 슬쩍 고개를 돌려 동호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대충 입은 티가 폴폴 나는 교복 꼴에 한숨부터 나왔다. 민현은 동호의 뒤로 다가가 아무렇게나 걸친 가디건을 당겨주고, 반쯤 접힌 목 깃도 세워주었다.

 

“교복 좀 똑바로 입고 나와, 동호야.”

“아, 뭐 어때. 학주한테 걸리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단정히 입고 다니는 게 보기 좋잖아.”

“누구 보기 좋으라고.”

 

그렇게 툴툴거리는 동호의 입은 또 툭 튀어나와 있었다. 민현은 그 부리입을 찰싹 때려주었다. 펄쩍 뛰며 아파! 하고 엄살을 부리는 동호의 넥타이가 아무렇게나 덜렁거리는 것을, 민현은 놓치지 않았다. 한숨을 쉰 민현이 동호의 어깨를 잡아 진정시킨 뒤 넥타이를 똑바로 매주었다.

 

“교복을 5년 째 입고 있으면서 넥타이도 못 매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여기 있다, 왜. 불만 있어?”

“유치하게. 동호 너 애기야?”

“아, 무슨 애기야!”

 

동호가 또 펄쩍 뛰려고 했지만, 민현이 한 발 먼저 어깨를 잡아 누르는 통에 그러지 못했다. 동호는 대신 주먹으로 민현의 가슴께를 퍽퍽 쳤다. 아파, 동호야. 힘이 전혀 실리지 않아 솜털만큼도 아프지 않으면서 민현은 엄살을 피웠다. 그럼 동호는 입술을 다시 쭉 내밀면서도 주먹을 내리는 것이다. 하여간 단순해. 민현은 그런 동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동호가 또 펄쩍 뛰고, 계속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민현은 자부했다. 자신이 강동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노라고. 수면 패턴부터 사소한 생활 습관까지, 민현이 모르는 것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것이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야자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민현은 부리나케 짐을 챙겼다. 밤잠이 유난히 적은 동호는 분명 졸지도 않고 야자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테고, 종이 울리기도 전부터 짐을 싸고 있었을 것이다. 괜히 꾸물거리다간 동호가 왜 늦었냐며 짜증을 낼 것이 분명했다. 기껏해야 5분일 텐데도. 어찌 되었든 동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행동은 가급적이면 하고 싶지 않았다. 막 가방을 어깨에 매고 교실을 나서려는 찰나, 학생 한 명이 민현을 불러 세웠다.

 

“반장, 부탁할 게 있는데.”

 

젠장. 민현은 억지로 얼굴 근육을 움직여 웃는 표정을 짓고 학생을 돌아보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번 주 주번을 맡은 학생이었다. 민현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으니, 자기 대신 교실 정리를 해줄 수 있느냔 부탁이었다. 급한 일은 무슨, 당장 PC방으로 달려가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거절할 수 있었으나 명분이 없었다. 민현은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녹슨 기계처럼 뻣뻣해진 목을 억지로 움직여 고개를 끄덕이자, 학생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재빠르게 교실을 빠져나가는 얄미운 뒤통수를 잠깐 노려보던 민현은 한숨을 쉬며 교실 창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삐진 동호를 어떻게 달랠지 계산하고 있었다.

문단속까지 끝낸 민현은 빠른 걸음으로 동호의 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빠져나가 조용해야 할 복도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환호성을 지르고 휘파람을 부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는 동호의 교실이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 민현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교실의 앞문이 열리면서 여학생 하나가 뛰쳐나왔다. 민현과의 거리가 상당했는데도 귀며 얼굴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여학생이 사라지자 환호성 소리는 더욱 커졌다. 민현은 뒷문을 열고 교실 안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남학생들이 우르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심에는 동호가 있었다.

 

“아, 그만하라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동호가 소리를 질렀지만, 주변의 남학생들은 히죽거리며 동호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동호는 그것들을 밀어내려 팔을 휘두르며 씩씩거렸다. 민현은 그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고 표정이 굳었다. 예쁜 파스텔 톤의 편지봉투. 전후 상황을 몰라도 충분히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대문짝만하게 그려진 하트가 확인사살까지 해주었다.

 

“어, 민현아!”

 

동호는 그제야 민현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굳어있는 민현을 본 동호는 잠깐 눈을 끔뻑거렸다. 시선이 조금 아래로 움직였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민현의 눈은 동호의 손에 들린 편지봉투에 꽂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귀가 홧홧하게 달아오르고 숨이 거칠어졌다. 민현이 그렇게 굳어있는 사이, 학생들 틈에서 가방을 끌어당긴 동호가 민현을 향해 뛰어왔다. 민현은 동호가 손목을 잡아오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야, 뭘 멍하니 있어!”

“어, 어?”

“빨리 가자, 저것들이 또 귀찮게 하기 전에.”

 

동호는 민현의 손목을 잡고 그대로 교문까지 내달렸다. 민현은 동호에게 끌려가면서도 편지봉투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쓰인 강동호 석 자가 보였다. 시원한 바깥바람을 쐬면서 잠깐 가라앉았던 속이 다시 맹렬하게 끓었다. 동호가 여학생에게 고백을 받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분명 동호는 잘생긴 편에 속했으니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민현은 화가 났다. 화가 주체가 되지 않았다……

잠깐, 내가 왜 화를 내지?

 

집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짧은 줄 몰랐다. 동호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이 태어나 처음으로 서러워졌다. 어깨가 저절로 축 쳐지는 기분이었다. 아마 민현은 이 문제의 답을 찾느라 밤을 꼬박 세울 것이다. 강동호가 여학생에게 고백을 받은 것에 대해 왜 황민현이 화를 내는지에 대해서. 어쩌면 동호도 밤을 지샐 지도 모른다. 여학생의 고백을 거절할지, 받아들일지 고민하느라. 그 생각을 하자 다시 열불이 뻗쳤다. 동호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워서 내가 화가 나는 이유를 아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럴 수 없다는 건 민현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동호는 왼쪽으로, 민현은 오른쪽으로 가야 했다. 민현은 침울해진 얼굴로 동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민현아.”

 

하지만 동호가 한 발 빨랐다. 민현은 숙였던 고개를 들고 동호를 바라보았다. 가로등의 주황빛 불빛 아래에 비친 동호의 눈동자가 민현을 향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어?”

 

민현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속마음을 들켜 뜨끔하는 느낌과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언제부터 눈치 채고 있던 걸까. 계속 민현이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걸까. 머리가 빙빙 돌았다. 커다래진 눈을 끔뻑거리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못하는 민현을 바라보던 동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민현을 향하고 있는 눈동자는 생각을 읽기 힘들었다.

 

“너 하고 싶은 말 있잖아.”

“…어, 어떻게 알았어?”

 

저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민현의 마음 한 구석에 자신의 머리를 마구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걸 행동에 옮길 만큼 멀쩡한 정신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동호는 팔짱을 끼고 삐딱한 자세로 민현을 향해 섰다. 민현의 키가 더 큰 탓에 동호가 민현을 올려다봐야 했다.

 

“너 할 말 있으면 손가락으로 허벅지 두드리잖아.”

 

뭐? 민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오른손이 허벅지 옆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 있었다. 그제야 허벅지에 찌르르한 감각이 느껴졌다. 어색하게 허공에서 멈춰있는 검지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 민현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호는 팔짱을 낀 자세 그래도 민현을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화 나면 주먹 쥐었다가 펴고. 아까 교실 앞에서처럼.”

“……”

“당황하거나 긴장하면 눈 깜박거리고. 너 오는 내내 그랬어.”

“……”

“그래서, 할 말이 뭐야?”

 

민현은 정신이 멍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한테 그런 습관들이 있었나? 살면서 단 한 번도 자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민현이 대답이 없자, 동호는 팔짱을 풀고 민현에게 성큼 다가왔다. 그제야 민현이 고개를 들고 동호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는데도 동호의 갈색 눈동자는 선명했다. 예쁜 눈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줄 수 있어?”

“……응?”

“솔직하게 대답해줘.”

“…뭔…데?”

“내가 그 애랑 사귀었으면 좋겠어?”

 

동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현이 고개를 빠르게 내저었다. 절대 싫어. 그렇게 말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민현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귀와 얼굴에 홧홧하게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호는 왠지 안심한 듯한 눈치였다. 사납던 눈초리가 조금 풀어졌다.

 

“그럼 딱 하나만 더 물어볼게.”

 

민현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시야가 계속 깜박거렸다. 처음에는 가로등 불빛 때문인 줄 알았는데, 민현이 맹렬한 속도로 눈을 깜빡이고 있는 것이었다. 민현은 그제야 자신의 습관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동호는 망설이는 것처럼 잠깐 민현의 눈을 피했다. 그 잠깐 사이에 동호의 눈에 많은 감정들이 스쳤다. 찰나의 망설임, 두려움, 그리고 결단. 동호가 다시 눈을 들어 민현을 마주했다.

 

“널 좋아해.”

“……”

“친구 이상으로.”

“……어?”

“너는 나를 좋아해?”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민현은 자신이 눈을 더 이상 깜박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신 동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꽉 쥔 주먹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긴장하면 나오는 동호의 습관이다. 민현의 시선이 다시 동호의 눈으로 옮겨갔다. 빛나는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 것을 보니 알 수 없는 감각이 찌르르 온몸을 울렸다. 민현은 혀로 입술을 적셨다. 동호는 그 행동을 알고 있었다. 초조할 때마다 나오는 습관이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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