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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포

“나 결혼해.”


커피를 타던 민현의 뒷모습이 우뚝 멈췄다. 그러나 3초도 지나지 않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호는 그 꼴을 보며 속으로 맘껏 비웃었다. 병신새끼. 민현은 동호의 앞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신도 그 앞에 앉았다. 두 잔의 커피잔에선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래? 축하해.”

“어.”


동호는 커피가 냉수라도 되는 양 벌컥 들이켰다. 커피는 동호가 좋아하는 온도에 맞게 데워져 있었다. 그는 커피가 반쯤 남은 잔을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민현의 커피는 한 방울도 줄지 않은 채였다.


“결혼식은 언제야?”

“다음 달.”

“얼마 안 남았네. 상대는 어때? 좋은 사람이야?”

“그럭저럭.”


동호는 흘끗 민현의 커피잔을 살펴보았다. 정확히는, 그 잔을 쥔 손을 살폈다.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온 손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동호는 턱 끝까지 차오른 비아냥을 꾹 눌렀다. 괜찮은 척도 존나 못하네. 민현은 떨리는 손을 숨기기라도 하듯 깍지를 쥐었다. 그 꼴이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동호는 잔에 남아있는 커피를 전부 들이켰다.


“나 원망 안 해?”


커피잔만 죽어라 노려보던 민현이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곧 동호와 민현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민현은 동호와 오래, 아주 오래 눈을 맞추고 있었다. 눈빛만으로 동호를 빨아들이기라도 하려는 듯이. 침묵에 지친 동호가 먼저 입을 열려고 할 때쯤, 민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내가 어떻게 원망을 해, 동호야.”

“……”

“내가 무슨 자격으로 원망을 하겠어.”


동호는 대답하지 않고 민현을 응시하기만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민현은 탁자를 빙 돌아 동호에게 다가왔다. 동호의 눈이 민현을 따라 움직였다. 그 눈에 담긴 감정은 읽어내기 힘든 것이었다. 검지로 동호의 턱을 들어올린 민현은 그에게 입맞춤했다. 동호는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혀에게 얌전히 입 안을 내어주었다. 숨을 쉬기 위해 잠시 입술이 떨어졌을 때, 동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자격이 없긴 하지.”


민현은 동호의 눈을 응시하며 다시 입술을 부딪혀 왔다. 동호는 끝까지 민현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호화로운 결혼식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붐비는 법이었다. 오늘 그 화려함의 주인공이 된 동호는 수많은 떡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중이었다. 곧 보스의 사위가 될 사람에게 점수를 따 보려고 발버둥치는 꼴이 아주 우스웠다. 주례를 봐주기로 했다는 목사가 동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신부 측에서 미리 알아봤던 목사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온 탓에, 급하게 새로 알아본 목사였다. 동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목사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그래서, 황민현이 얼마나 줬어? 머릿속을 웅웅 울리는 물음은 조용히 묻어둔 채였다.


목사가 입장하고 난 뒤, 동호는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 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동호는 웃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어젯밤, 제 어깨를 잔뜩 짓씹어놓던 민현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도박꾼이나 약쟁이들 대가리나 후려치고 다니는 조폭새끼 주제에 쓸데없이 잘생긴 그 얼굴. 정말 갈아버리고 싶은 얼굴이야. 민현을 생각하며 서 있다 보니, 곧 신부와 신부 아버지가 입장했다. 수줍은 척 갖은 연기를 하고 있는 신부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는, 언젠가 민현이 보여준 라이벌 조직의 윗대가리와 아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동호가 신부의 손을 넘겨받으려 하자, 그가 동호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 딸 몸에 작은 생채기라도 내면 죽을 줄 알아라.”


동호는 지레 겁을 먹은 척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만 얼굴 근육이 씰룩거렸다.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어야 할 정도였다. 탐탁지 않은 얼굴로 돌아서는 늙은이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당신 딸에게 생채기를 낼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동호는 그 대신 신부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어디선가 이글거리는 시선이 날아드는 것 같았다. 동호는 그것을 맘껏 즐겨두기로 했다.


주례사는 길고 지루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줘야 한다는, 뭐 그런 뻔하고 유치한 이야기 뿐이었다. 처음 듣는 사람들이야 설레고 두근거리겠지만, 동호에겐 전혀 아니었다. 목사가 사랑에 대해 연설하며 목소리를 높일 즘에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저 인간이 사랑을 논하고 있다는 것도 우스웠지만,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더 우스웠다. 애초에 사랑이 무엇인데 다들 그렇게 감동 받았다는 표정을 짓는 건지, 그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황민현이 나한테 하는 그 좆 같은 거, 그것도 사랑인가?


“그럼, 신랑 신부의 반지 교환이 있겠습니다.”


직원의 손에 들린 화려하게 치장된 쿠션 위에 반지 두 개가 올려져 있었다. 본 기억이 없는 반지니, 아마 신부가 멋대로 고른 것일 테지. 어차피 동호는 반지에 관심이 없었다. 절대 손가락에 끼우고 다닐 일이 없는 반지라는 걸,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신랑이 먼저 반지를 끼워주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부가 먼저 반지를 집어 들었다. 동호는 얌전히 제 손을 내밀었다. 신부는 동호의 손에 조심스럽게 반지를 끼웠다. 보아하니 자신의 안목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참 순진하고, 바보 같은 여자였다. 불쌍할 정도로. 제 손에 반지가 끼워진 것을 확인한 동호는 곧바로 쿠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동호가 반지를 집는 것보다, 목사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타앙―


총알은 신부의 심장을 정확하게 뚫고 지나갔다. 동호는 신부의 흰 웨딩드레스 위로 붉은 핏자국이 번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첫 총성을 시작으로 모든 직원들, 정확히는 직원으로 위장했던 황민현의 충직한 개들이 총을 꺼내 들고 마구잡이로 갈겨대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동호는 누구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가 원하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너도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쪽이 취향이라 이거지. 동호는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황민현이 하는 모든 짓이 웃겼다. 길거리의 병신들에게 수금하러 돌아다니는 것도, 구역 싸움이라는 핑계를 대며 사람들 대가리에 구멍이나 내는 것도, 제 뒷구멍에 눈이 돌아가 다정한 연인 행세를 하는 것도, 이딴 거지 같은 질투나 하는 것도. 너무 우스워서 웃음이 멈추지 않아.


동호의 웃음소리가 멎었을 즘, 총성도 멈췄다. 황민현의 개들은 빠르게 식장을 나갔다. 결혼식장 안에는 오롯이 동호만이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었다. 벽이라고 생각했던 단상 뒤쪽의 벽이 열렸다. 그곳에서 민현이 걸어 나왔다. 동호는 그를 똑바로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민현이 죽고 못사는, 아주 해사한 미소를.


“이번에는 꽤 오래 기다렸네.”


성큼성큼 걸어온 민현은 동호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동호를 바라보던 민현은 가만히 손을 뻗어 동호의 얼굴에 튄 핏자국을 문질렀다. 동호는 가만히 민현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민현은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핏자국을 전부 닦아냈다. 그의 입에서 더 없이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씨발새끼가 너한테 뭐라고 할 때, 뛰쳐나올 뻔 했어.”


민현이 지칭하고 있는 것은 동호의 장인어른이 될 뻔한 남자였다. 의자에 볼썽사납게 늘어져 죽어 있는 모습은, 한 조직을 이끌던 윗대가리의 죽음이라고 하기엔 조금 불쌍했다. 민현은 동호의 얼굴을 다 닦아주고는 신부의 시체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전혀 배려 없는 손길로 그녀의 머리 위에 씌워진 면사포를 벗겨냈다. 시체 아래에 깔려 있던 아랫부분이 지이익 소리를 내며 찢어졌지만, 둘 중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피에 젖어 보기 흉해졌을 테니. 민현은 아주 다정한 손길로 동호의 머리 위에 면사포를 씌웠다. 찢어진 면사포는 동호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역시 남이 쓰던 거라, 너한테는 별로 안 어울리네.”

“……”

“그래도 예뻐.”


민현의 얼굴에 사랑스러운 미소가 피어 올랐다. 동호는 굳이 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민현은 동호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가 늘 뿌리고 다니는 향수 냄새가 났다. 역겨워. 동호는 민현을 마주 안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민현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동호의 얼굴을 덮은 면사포를 걷어내고 그에게 키스했다. 동호는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고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동호의 입술을 가볍게 누르고 떨어진 민현은 동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한테 더 잘 어울릴만한 걸로 사줄게. 원한다면 네가 골라도 좋아. 그러면……”

“아니.”


동호는 민현의 가슴을 밀어냈다. 민현은 순순히 동호를 품에서 놓아주었지만, 동호의 어깨를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동호는 민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 어떤 가면도 쓰지 않은 온전한 표정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무표정이었지만, 두 눈은 분노와 증오로 물들어 있었다.


“네가 무슨 수를 써서 내 마음을 돌리려고 해도, 너와 결혼하는 일은 없어.”

“……”

“널 사랑하는 일도 없어.”


동호는 어깨를 잡은 민현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 그를 지나쳐 결혼식장 밖을 향해 걸어갔다. 머리에 씌워진 면사포는 거칠게 벗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바닥에 떨어진 면사포는 동호의 구둣발에 짓밟혀 처참히 구겨졌다. 동호는 부러 그것을 더 세게 밟았다. 그것이 민현의 심장이라도 되는 양. 동호가 완전히 식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민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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